젠더리스 패션의 확산

"남성복"과 "여성복"이라는 오래된 구분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젠더리스 패션은 더 이상 실험적인 니치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패션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025 F/W 시즌, 런던, 밀라노, 파리의 주요 컬렉션에서 젠더 중립적 디자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며, K-패션 브랜드들은 이 흐름을 선도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습니다. 젠더리스 패션의 뿌리는 1960-70년대 유니섹스 무브먼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의 젠더리스 패션은 단순히 "남녀가 같은 옷을 입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는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 욕구, 그리고 획일화된 젠더 규범에 대한 거부를 담고 있습니다. MZ세대는 "여자라서 스커트를 입어야 한다"거나 "남자는 핑크를 입으면 안 된다"는 식의 구시대적 고정관념을 거부합니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젠더리스 패션은 바로 이러한 세대의 가치관을 구현한 것입니다. 한국 브랜드들은 젠더리스 패션을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앤더슨벨은 한국 전통 복식의 여유로운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아,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핏을 만들어냅니다. 한복이 원래 남녀의 구분은 있되, 몸의 곡선을 드러내기보다는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품위를 표현했던 것처럼, 앤더슨벨의 디자인은 신체의 성적 특징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습니다. 2025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오버사이즈 코트와 와이드 팬츠는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이 같은 사이즈를 착용했고, 둘 다에게 완벽하게 어울렸습니다. 아더에러는 더욱 실험적입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던 요소(넓은 어깨, 박시한 실루엣)와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던 요소(부드러운 색감, 유려한 곡선)를 자유롭게 섞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제3의 미학을 창조합니다. 그들의 시그니처인 오버사이즈 그래픽 스웻셔츠는 누가 입어도 똑같이 멋지며, 착용자의 성별을 의식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아니라, "이 옷이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입니다. 젠더리스 패션의 확산은 패션 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은 "남성복"과 "여성복" 섹션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젠더리스 브랜드들은 이러한 구분을 거부하며, "All Gender" 또는 "Unisex" 섹션을 요구합니다. 일부 선도적인 리테일러들은 아예 젠더 구분 없이 스타일별로 상품을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캐주얼", "비즈니스", "스트리트" 같은 식으로요. 이는 단순한 진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패션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전환입니다. 사이징 시스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남성복의 "90, 95, 100" 같은 숫자 체계나 여성복의 "44, 55, 66" 같은 방식 대신, 젠더리스 브랜드들은 "XS, S, M, L, XL" 같은 중립적 표기를 사용합니다. 더 나아가 일부 브랜드는 가슴둘레, 어깨너비, 총장 같은 실제 치수만을 제공하여, 착용자가 자신의 신체 치수와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남성용인가 여성용인가"가 아니라 "내 몸에 맞는가"를 기준으로 옷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젠더리스 패션이 곧 "무성성(asexuality)"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다양한 형태의 성적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남성이 치마를 입거나, 여성이 남성 정장을 입는 것이 더 이상 "다른 성별의 옷을 빌려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정당한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해리 스타일스가 드레스를 입고 잡지 커버를 장식한 것이나, 틸다 스윈튼이 남성 정장으로 레드카펫을 밟는 것은 더 이상 화제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스타일일 뿐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젠더리스 패션은 합리적입니다. 연인이나 형제자매와 옷을 공유할 수 있고, 한 벌의 옷을 더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입니다. 유행에 덜 민감한 젠더리스 디자인은 오래 입을 수 있으며, 중고 거래 시에도 잠재적 구매자 풀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남성용"이라는 제약이 없으니, 그 옷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구매자가 될 수 있습니다. K-패션이 젠더리스 트렌드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 문화에 이미 젠더 중립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복의 저고리와 바지는 본질적으로 젠더 중립적인 아이템이며, 단지 길이와 장식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또한 K-pop 아이돌들의 중성적 미학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패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앤더슨벨과 아더에러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글로벌하게 통하는 젠더리스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젠더리스 패션은 더욱 확산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은 "모든 옷이 똑같아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다양해질 것입니다. 성별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면, 디자이너들은 더욱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더욱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젠더리스 패션은 단순히 "남성복과 여성복의 중간"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패션의 영역을 열고 있습니다.